의도된 우연, 흙과 나 사이에서
- 설명
- 작품
흙을 선택하는 일은, 어쩌면 삶의 태도를 선택하는 일과 닮아 있다. 유세리 작가는 공예를 공부하며 금속과 도자 사이에서 망설임 없이 흙을 골랐다. 날카롭고 차가운 물성 대신, 따뜻하고 말랑한 감촉 쪽으로 손을 뻗었다. 직관에 가까운 선택이었지만, 이후의 시간이 그것을 확신으로 바꿔놓았다.
집보다 더 오래 머물렀던 물레실에서 흙과 몸으로 친해지면서도, 이것이 평생의 업이 될 수 있을지는 쉽게 단언할 수 없었다. 졸업 후 그가 잠시 다른 길을 걷기도 한 이유다. 그러나 흙을 멀리 두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고, 가장 깊이 즐길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그렇게 다시 흙 앞에 선 그는 대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학부 시절이 흙과 싸워 이기려는 시간이었다면, 석사 과정은 흙을 동료로 받아들이는 시간이었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재료를 이해하고, 그것의 성질에 귀 기울이는 법을 익혀나갔고, 졸업 후에도 몇 년간 흙의 질감과 발색을 향한 실험을 거듭했다. 재료, 기술, 표현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단 한순간 맞아떨어지는 그 찰나를 위해 수없이 만들고 실패하면서도 다시 시작했다고, 지난한 시간에 대해 들려주었다.
그 긴 수행의 결실이 지난해 11월, 첫 개인전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갤러리 완물에서 치른 전시의 제목은 <의도된 우연 Intentional Serendipity>이다. 이는 작가가 오랫동안 자신의 작업을 관통하는 언어로 품어온 개념이다. 특정한 이미지나 도상을 미리 계획하지 않고, 연리문 물레 작업을 통해 흙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이끈다. 하얀 백자토와 붉은 옹기토가 물레 위에서 만나 그려내는 선과 면은 섬세하고 고요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계획과 우연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유세리 작가의 세계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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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리 작가
사실 그 시작은 단순히 오래된 벽돌 건물을 보며, 붉은 벽돌 같은 흙으로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부터였습니다. 이전에는 주로 깨끗하고 하얀 백자 흙을 사용했기 때문에 다른 재료를 탐색하던 중 눈에 들어온 것이 붉은 흙이었습니다. 재료학 수업 시간에 옹기토의 발색에 대해 배우게 되었고, 광물질 및 산화물 등을 첨가하여 질감과 발색을 조절하는 실험 끝에 붉은 옹기토를 얻게 되었습니다. 원하는 색상의 흙을 얻었지만 점력이 너무 낮아, 마치 모래처럼 흩어지는 흙이었습니다. 어떤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실험이나 다른 방식의 성형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주로 사용하던 백자토 사이에 붉은 옹기토를 끼워 넣어 물레 성형하는 시도를 하게 되었고, 그것이 지금 저의 주 작업인 연리문 작업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희고 맑은 백자토와 붉고 탁한 옹기토의 만남은 저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었습니다. 두 흙을 섞어 연리 작업을 열심히 진행하다 보니 두 흙이 섞여 제3의 흙이 부산물로 생성되었습니다. 이 흙을 그냥 버리기엔 환경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제3의 흙을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실험을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이로써 백자토, 옹기토, 하동 지역 고령토가 섞인 중간 색의 흙을 만들어 작업 과정에서 버려지는 흙을 최소화하고 재료의 순환을 꾀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오히려 이 두 번째 흙을 더 주로 사용하기도 하는 걸 보면, 우연히 만난 재료가 작업의 중요한 열쇠가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몇 년간 진행해온 작업의 정수를 한데 모아 선보이는 기회 자체가 매우 귀하게 느껴져서, 전시를 여는 것 자체가 감개무량했습니다. 특히 오랫동안 제 작업의 키워드로 생각해왔던 '의도된 우연(Intentional Serendipity)'을 타이틀로 내걸 수 있어 더욱 의미가 깊었습니다. 다만 전에 없던 신작을 발표하거나 새로운 시도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것들을 잘 정리해 보여준다는 의미가 저에게는 컸던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잘하는 것을 욕심 부리지 않고 단단하게 다듬어 작품에 녹여내고자 했습니다. 첫 개인전은 저의 작업을 스스로 확인하고 정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작업에 특정한 이미지나 도상을 새기지 않습니다. 모호하고 은근한 분위기를 작품에 담아,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각자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 하고자 합니다. 해 질 녘 얕은 구름과 노을이 어우러지는 풍경, 안개 낀 산등성이, 부서지는 파도의 잔상 같은 장면들을 투영하여 은은한 흙의 움직임을 기물의 표면에 포착해내는 것이 제 의도입니다. 연리문 물레 작업의 기법 특성상 의도한 이미지를 정확하게 구현하기는 어렵지만, 어느 정도 우연성을 받아들이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이 점은 오히려 제가 원하는 자연스러운 무늬를 만들어내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합니다.
사실 100% 확신과 만족을 가지며 작업한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이 부분은 앞으로 수십 년이 지나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대신 시기마다 궁금증을 일으키는 부분이 생기고, 그 호기심을 채워나가는 과정에서 작업의 동력을 얻고 있습니다. 재료, 기술, 표현 등 세 가지 요소가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한 번씩 찾아오는데, 상당히 추상적인 감각에 가까워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특정 기물에서 드러나기도 하고, 작업 과정의 어느 한 순간 쾌감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는 계속해서 '의도된 우연'을 작품에 투영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인 계획과 제작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즉흥적인 흐름 사이에서 적절한 지점을 포착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기물에 담아내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저는 무수히 만들고, 실험하고, 실패하고, 좌절합니다. 완벽한 결과물에 기뻐하는 순간보다 예상 밖의 변수에 당황하는 순간이 어쩌면 더 많은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수행은 예기치 못한 우연을 받아들이며 통제 밖의 결과를 수용하는 겸허함을 익혀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물론 우연적 효과에 기대어 요행을 바라는 마음은 아닙니다. 반복과 숙련을 통해 의도와 우연의 아이러니를 조화롭게 기물에 담아내고 싶습니다.
저는 밥그릇도 잘 만들고 싶고,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른 공예품도 잘 만들고 싶습니다. 둘 사이의 구분을 꽤 명확히 두고 작업하고 있습니다만, 둘 중 어디에 더 치중하고 있다고 단호하게 말하기는 어렵네요. 반드시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두 분야 모두 도예가로서의 제 정체성이 듬뿍 담겨 있으며, 이 두 기둥이 저를 지탱하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릇을 만들 때는 함께 사용하는 커틀러리가 어떤지, 재질이 나무인지 금속인지를 고려해 표면 처리 방식을 정합니다. 금속과의 마찰로 생기는 스크래치를 방지할 수 있도록 적절한 유약을 사용합니다. 입과 손에 직접 닿는 컵이나 잔의 경우에는 닿았을 때의 두께감과 온도감이 적절한지를 고려하여 두께를 설정합니다. 설거지를 할 때 너무 무겁거나 얇지는 않을지도 고려하게 됩니다. 여러 개의 그릇이 차곡차곡 잘 쌓여 보관이 용이한지도 살핍니다. 형태를 결정짓는 첫 번째 기준은 아니지만, 실제로 그릇을 사용하다 보면 꽤 중요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입니다.
대학에서 도자공예를 처음 배운 터라, 은사이신 한정용 선생님의 영향이 가장 큽니다. 도자공예의 기본을 선생님께 배우며 어떤 작가가 되어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소박하고 담백하지만 깊이 있는 아름다움에 대해 알려주셨습니다. 화려하고 복잡하지 않아도, 허투루 만들지 않은 사물이 가진 밀도로부터 오는 감동이 있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꾸준하고 부지런하게 작업하는 정직한 수행이 결국 하고자 하는 바를 펼칠 수 있게 해준다는 기본적인 작업 태도를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6년 전, 이제 막 학부를 졸업한 저는 아직 흙을 싸워서 이겨내야 하는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흙은 언제나 제 말을 듣지 않았고, 제멋대로여서 예상 밖의 변수를 만들어내는 사고뭉치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 흙을 기선 제압하고 마음대로 다룰 수 있을까 고민하며 작업했던 것 같습니다. 기술을 연마하고 여러 시도를 통해 변수를 통제하는 과정이 마치 전쟁을 치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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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선택하는 일은, 어쩌면 삶의 태도를 선택하는 일과 닮아 있다. 유세리 작가는 공예를 공부하며 금속과 도자 사이에서 망설임 없이 흙을 골랐다. 날카롭고 차가운 물성 대신, 따뜻하고 말랑한 감촉 쪽으로 손을 뻗었다. 직관에 가까운 선택이었지만, 이후의 시간이 그것을 확신으로 바꿔놓았다.
집보다 더 오래 머물렀던 물레실에서 흙과 몸으로 친해지면서도, 이것이 평생의 업이 될 수 있을지는 쉽게 단언할 수 없었다. 졸업 후 그가 잠시 다른 길을 걷기도 한 이유다. 그러나 흙을 멀리 두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고, 가장 깊이 즐길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그렇게 다시 흙 앞에 선 그는 대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학부 시절이 흙과 싸워 이기려는 시간이었다면, 석사 과정은 흙을 동료로 받아들이는 시간이었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재료를 이해하고, 그것의 성질에 귀 기울이는 법을 익혀나갔고, 졸업 후에도 몇 년간 흙의 질감과 발색을 향한 실험을 거듭했다. 재료, 기술, 표현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단 한순간 맞아떨어지는 그 찰나를 위해 수없이 만들고 실패하면서도 다시 시작했다고, 지난한 시간에 대해 들려주었다.
그 긴 수행의 결실이 지난해 11월, 첫 개인전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갤러리 완물에서 치른 전시의 제목은 <의도된 우연 Intentional Serendipity>이다. 이는 작가가 오랫동안 자신의 작업을 관통하는 언어로 품어온 개념이다. 특정한 이미지나 도상을 미리 계획하지 않고, 연리문 물레 작업을 통해 흙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이끈다. 하얀 백자토와 붉은 옹기토가 물레 위에서 만나 그려내는 선과 면은 섬세하고 고요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계획과 우연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유세리 작가의 세계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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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리 작가
사실 그 시작은 단순히 오래된 벽돌 건물을 보며, 붉은 벽돌 같은 흙으로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부터였습니다. 이전에는 주로 깨끗하고 하얀 백자 흙을 사용했기 때문에 다른 재료를 탐색하던 중 눈에 들어온 것이 붉은 흙이었습니다. 재료학 수업 시간에 옹기토의 발색에 대해 배우게 되었고, 광물질 및 산화물 등을 첨가하여 질감과 발색을 조절하는 실험 끝에 붉은 옹기토를 얻게 되었습니다. 원하는 색상의 흙을 얻었지만 점력이 너무 낮아, 마치 모래처럼 흩어지는 흙이었습니다. 어떤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실험이나 다른 방식의 성형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주로 사용하던 백자토 사이에 붉은 옹기토를 끼워 넣어 물레 성형하는 시도를 하게 되었고, 그것이 지금 저의 주 작업인 연리문 작업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희고 맑은 백자토와 붉고 탁한 옹기토의 만남은 저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었습니다. 두 흙을 섞어 연리 작업을 열심히 진행하다 보니 두 흙이 섞여 제3의 흙이 부산물로 생성되었습니다. 이 흙을 그냥 버리기엔 환경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제3의 흙을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실험을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이로써 백자토, 옹기토, 하동 지역 고령토가 섞인 중간 색의 흙을 만들어 작업 과정에서 버려지는 흙을 최소화하고 재료의 순환을 꾀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오히려 이 두 번째 흙을 더 주로 사용하기도 하는 걸 보면, 우연히 만난 재료가 작업의 중요한 열쇠가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몇 년간 진행해온 작업의 정수를 한데 모아 선보이는 기회 자체가 매우 귀하게 느껴져서, 전시를 여는 것 자체가 감개무량했습니다. 특히 오랫동안 제 작업의 키워드로 생각해왔던 '의도된 우연(Intentional Serendipity)'을 타이틀로 내걸 수 있어 더욱 의미가 깊었습니다. 다만 전에 없던 신작을 발표하거나 새로운 시도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것들을 잘 정리해 보여준다는 의미가 저에게는 컸던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잘하는 것을 욕심 부리지 않고 단단하게 다듬어 작품에 녹여내고자 했습니다. 첫 개인전은 저의 작업을 스스로 확인하고 정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작업에 특정한 이미지나 도상을 새기지 않습니다. 모호하고 은근한 분위기를 작품에 담아,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각자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 하고자 합니다. 해 질 녘 얕은 구름과 노을이 어우러지는 풍경, 안개 낀 산등성이, 부서지는 파도의 잔상 같은 장면들을 투영하여 은은한 흙의 움직임을 기물의 표면에 포착해내는 것이 제 의도입니다. 연리문 물레 작업의 기법 특성상 의도한 이미지를 정확하게 구현하기는 어렵지만, 어느 정도 우연성을 받아들이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이 점은 오히려 제가 원하는 자연스러운 무늬를 만들어내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합니다.
사실 100% 확신과 만족을 가지며 작업한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이 부분은 앞으로 수십 년이 지나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대신 시기마다 궁금증을 일으키는 부분이 생기고, 그 호기심을 채워나가는 과정에서 작업의 동력을 얻고 있습니다. 재료, 기술, 표현 등 세 가지 요소가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한 번씩 찾아오는데, 상당히 추상적인 감각에 가까워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특정 기물에서 드러나기도 하고, 작업 과정의 어느 한 순간 쾌감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는 계속해서 '의도된 우연'을 작품에 투영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인 계획과 제작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즉흥적인 흐름 사이에서 적절한 지점을 포착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기물에 담아내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저는 무수히 만들고, 실험하고, 실패하고, 좌절합니다. 완벽한 결과물에 기뻐하는 순간보다 예상 밖의 변수에 당황하는 순간이 어쩌면 더 많은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수행은 예기치 못한 우연을 받아들이며 통제 밖의 결과를 수용하는 겸허함을 익혀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물론 우연적 효과에 기대어 요행을 바라는 마음은 아닙니다. 반복과 숙련을 통해 의도와 우연의 아이러니를 조화롭게 기물에 담아내고 싶습니다.
저는 밥그릇도 잘 만들고 싶고,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른 공예품도 잘 만들고 싶습니다. 둘 사이의 구분을 꽤 명확히 두고 작업하고 있습니다만, 둘 중 어디에 더 치중하고 있다고 단호하게 말하기는 어렵네요. 반드시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두 분야 모두 도예가로서의 제 정체성이 듬뿍 담겨 있으며, 이 두 기둥이 저를 지탱하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릇을 만들 때는 함께 사용하는 커틀러리가 어떤지, 재질이 나무인지 금속인지를 고려해 표면 처리 방식을 정합니다. 금속과의 마찰로 생기는 스크래치를 방지할 수 있도록 적절한 유약을 사용합니다. 입과 손에 직접 닿는 컵이나 잔의 경우에는 닿았을 때의 두께감과 온도감이 적절한지를 고려하여 두께를 설정합니다. 설거지를 할 때 너무 무겁거나 얇지는 않을지도 고려하게 됩니다. 여러 개의 그릇이 차곡차곡 잘 쌓여 보관이 용이한지도 살핍니다. 형태를 결정짓는 첫 번째 기준은 아니지만, 실제로 그릇을 사용하다 보면 꽤 중요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입니다.
대학에서 도자공예를 처음 배운 터라, 은사이신 한정용 선생님의 영향이 가장 큽니다. 도자공예의 기본을 선생님께 배우며 어떤 작가가 되어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소박하고 담백하지만 깊이 있는 아름다움에 대해 알려주셨습니다. 화려하고 복잡하지 않아도, 허투루 만들지 않은 사물이 가진 밀도로부터 오는 감동이 있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꾸준하고 부지런하게 작업하는 정직한 수행이 결국 하고자 하는 바를 펼칠 수 있게 해준다는 기본적인 작업 태도를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6년 전, 이제 막 학부를 졸업한 저는 아직 흙을 싸워서 이겨내야 하는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흙은 언제나 제 말을 듣지 않았고, 제멋대로여서 예상 밖의 변수를 만들어내는 사고뭉치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 흙을 기선 제압하고 마음대로 다룰 수 있을까 고민하며 작업했던 것 같습니다. 기술을 연마하고 여러 시도를 통해 변수를 통제하는 과정이 마치 전쟁을 치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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