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움으로 고통을 다루는 법 - 씩씩 작가
- 설명
- 작품
씩씩의 작품을 마주하면 자연스럽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둥글둥글한 캐릭터와 밝은 색감, 어디선가 본 듯한 친근한 표정. 작품은 빠르게 관객의 경계를 무장해제시킨다. 그러나 이 안도감은 오래가지 않는다. 귀여움의 뒤편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씁쓸함이, 경쾌함 아래에는 묵직한 질문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씩씩(최범식)은 스스로를 “비관적이지만 낙관적인 태도를 지향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 모순적인 자기 규정은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그는 삶을 쉽게 긍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작품은 ‘인생의 기본 값은 고통’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다만 그 고통을 대하는 방식만큼은 끝까지 유머와 위트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의 대표 캐릭터 ‘밴지’는 이러한 태도의 집약체다. 밴지는 어둡고 낮은 곳에서 출발한 존재이지만, 결코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과장된 눈망울과 붉은 코, 단순한 표정 속에는 욕망과 불안, 그리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생의 의지가 함께 담겨 있다. 밴지는 고통을 제거하려는 캐릭터가 아니라, 고통을 끌어안은 채 살아가는 태도를 상징한다.
씩씩의 작업이 흥미로운 지점은, 부정적인 감정을 애써 미화하거나 극복의 서사로 포장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는 열등감, 불안, 권태와 같은 감정들을 그대로 꺼내어 캐릭터의 형태로 제시한다. 그리고 그것을 무겁게 설교하기보다, 농담처럼 건넨다. 불쾌한, 불안한 현실을 향해 던지는 유쾌한 한 마디처럼.
그래서 그의 작품은 관객에게 어떤 감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위로를 강요하지도, 해석을 유도하지도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남고, 또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각자의 거리에서 머물 수 있도록 열어두는 태도 역시 씩씩 작업의 중요한 일부다.
최근 씩씩은 밴지를 중심으로 한 세계관을 점차 확장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이미지 반복이 아니라, 감정의 구조를 캐릭터와 서사로 한층 심도 있게 풀어내려는 시도다. 아울러 순수 예술과 상업, 마니아와 대중의 경계를 넘나들며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작업 형식도 모색 중이다.
비관을 출발점으로 삼되, 끝내 낙관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
씩씩의 작업은 조용히 묻는다.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도, 우리는 충분히 사랑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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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명 ‘씩씩’은 단순하지만 인상적인 이름입니다. 이 이름에 담긴 의미부터 듣고 싶어요.
작가명에도 제 성향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처음부터 멋있거나 그럴싸한 이름은 원하지 않았고, 오히려 촌스럽고 우스꽝스럽지만 직관적인 이름을 짓고 싶었습니다. 본명 ‘최범식’에서 촌스럽게 느껴졌던 ‘식’자를 반복해 ‘씩씩’이라는 이름을 떠올렸는데, 처음에는 너무 경박한 건 아닐까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씩씩’이라는 단어 안에 비관적인(씩씩대다) 의미와 낙관적인(씩씩하다) 의미가 동시에 담겨 있다는 점이, ‘어떤 현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되 낙관적인 태도로 표현’하는 제 작업 성향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느껴 이 이름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도예가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두더지 ‘밴지’ 캐릭터가 작업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 캐릭터는 어떻게 탄생했고, 또 작가님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과거 약 6년동안 지하 작업실에서 도예가로 생활했습니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암울하고 막막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던 중 월트 디즈니가 무명 시절 살았던 창고에서 동거하다시피 했던 쥐들을 모티브로 미키마우스를 만들었다는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훗날 그 이야기가 디즈니사에 의해 만들어진 치밀한 비즈니스 마케팅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나도 디즈니와 비슷한 처지 같은데, 그럼 난 어떤 캐릭터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자조 섞인 질문을 시작으로 낙서를 끄적였고, 그렇게 밴지(‘반지하’에서 나온 이름)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밴지를 가장 잘 표현하는 작품은 ‘지하실 부르스’가 될 것 같습니다.
'밴지'는 탄생한 지 얼마 안 된 캐릭터지만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캐릭터를 완성하기까지 어떤 노력과 시도가 있었나요.
창작자로서의 커리어는 도예가로 시작했지만, 사실 제 뿌리는 아주 어릴 적부터 즐겨 그렸던 '만화’라고 생각합니다.
중학생 때는 애니메이션 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했을 정도로 만화를 좋아했습니다. 어떤 계기로 도예를 전공하고 도예가가 되었지만, 그 시절의 작업 주제도 캐릭터였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아주 오랫동안 캐릭터를 그리고 만들어왔고, 그런 면에서 지금의 밴지는 축적된 시간의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작품이 탄생한 배경, 스토리를 알게 되면 그 반어법적인 표현해 놀라게 됩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작가님은 “인생의 본질은 고통이라고 믿는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런 깨달음, 믿음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고, 이를 작업에 어떻게 반영하고 있나요?
도예가 시절에는 주로 사회적 이슈 같은 외부의 문제에 집중했습니다. 당시 저는 굉장히 반골 성향이 다분했는데, 사실 그때는 제가 왜 그렇게 세상을 삐딱한 태도로 바라보았는지 스스로도 잘 몰랐습니다.
본격적으로 밴지 세계관을 만들면서 제 내면을 솔직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진 비관적인 태도의 뿌리가 결국 제 ‘결핍’에 의한 ‘열등감’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사실 이때 사춘기가 뒤늦게 찾아온 것 같다고 느낄 정도로 방황하기도 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쇼펜하우어, 불교 철학을 접하며 ‘인생의 본질은 고통’, ‘고통의 뿌리는 욕망과 집착'에 있다는 진리에 깊게 공감했어요. 앞서 이야기했던 결핍, 열등감 따위의 번뇌도 결국 욕망이 원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인생은 고통이다’ 에서 끝이 아니라 고통을 직시하고 잘 다스려서 행복을 지향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며, 이 과정을 작업을 통해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추상적인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해내는 작가님만의 작업 방식이 궁금합니다.
작업의 주제가 ‘고통’이다 보니, 일상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번뇌들을 도상으로 풀어내는 편입니다. 어떤 때는 단번에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마음에 드는 도상이 나올 때까지 지우고 묵히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하며 어렵게 완성하기도 합니다. 번뇌라는 추상적인 감정을 시각적으로 바꾸는 과정은 늘 쉽지 않습니다.
머릿속의 여러 재료를 조합해 은유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이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이 독서입니다. 사실 저는 독서 자체에 큰 취미가 있는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좋은 작업을 위한 재료를 찾기 위해 마치 심마니가 약초를 찾으러 다니는 마음으로 절실하게 책을 읽고 탐구하려고 노력합니다.
요즘은 나카노 교코의 ‘무서운 그림’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고전 명화들의 숨은 이야기를 작가만의 다채로운 관점(매콤한 맛)으로 해설해주는 내용입니다.
작품은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되기 마련입니다. 이에 대해 작가님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삶에서 겪는 번뇌들을 캐릭터 세계관으로 재가공하는 과정 자체가 제게는 치유이자 유희입니다. 저는 그 창작의 과정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관객이 제 작품을 단순하고 귀여운 캐릭터로 받아들이든, 그 이면의 메시지까지 받아들이든 그다지 의미를 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작가의 의도를 강요하기보다는, 각자의 시선으로 자유롭게 해석되는 편이 자연스럽다고 생각됩니다.
제 작업이 어떤 의미로든 누군가에게 닿아 관심을 받고 사랑받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것 같습니다.
작가님은 자신 역시 창작자이자 소비자로서 “모든 콘텐츠는 관객의 첫 시선을 8초 이상 사로잡아야 성공한다”는 법칙을 공감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작품을 그릴 때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있나요?
캐릭터라는 장르 자체도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강력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제 작품에는 유쾌한 캐릭터의 외형과 대비되는 ‘페이소스’가 담겨있는데, 밝은 모습 뒤에 숨겨진 쓸쓸함이나 비관적인 정서를 통해 관객의 흥미를 자극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요소로 은유적인 오브제들을 통해 ‘저건 어떤 의미일까?’하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유도합니다. 이런 과정들이 관객의 흥미와 호기심을 이끌어낸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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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보면 이제 밴지뿐만 아니라 밴지 여자친구도 보입니다. 앞으로 확장해 나갈 밴지의 세계관이 궁금합니다. 혹시 도예, 입체 작품으로도 밴지를 만날 수 있을까요?
우선 밴지의 페어링 캐릭터는 ‘왠지’입니다. 밴지라는 이름이 우울한 ‘반지하’로부터 영감을 얻은 것과는 반대로, “왠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 는 희망적인 의미로 ‘왠지’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습니다. 제 작업 중 <Hug> 연작을 기획하던 중 밴지의 페어링 캐릭터가 필요했는데, 이때 처음으로 왠지를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AI로 밴지 아트토이를 만들고 있었는데요, 언젠가는 꼭 아트토이로 관객들에게 사랑받는 날이 오길 기대하고있습니다.
작가님은 자신의 작품이 궁극적으로 감상자에게 어떤 존재가 되기를 바라나요?
과거에는 제 작업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영감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죠.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런 표현들이 위선적인 것 같다고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누군가를 치유하겠다는 거창한 목표보다는, 그냥 더 솔직해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저 제 작품과 캐릭터들이 제가 죽고 나서도 오래도록 특별한 존재로 기억되고 사랑받기를 바랍니다. 작가의 손을 떠나 독자적인 생명력을 가진 존재로서 대중에게 기억되는 존재가 되길 바랍니다.
앞으로 작가님의 작품 세계는 어떻게 확장되어 나갈지 궁금합니다. .
욕망을 상징하는 ‘밴지’를 시작으로 열등감, 권태, 불안, 분노 등 욕망에서 파생된 부스러기 같은 감정들을 캐릭터화하여 세계관을 확장해 나갈 계획입니다.
단기적으로는 회화 작가로서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사랑받는 것이 목표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이 세계관을 탄탄한 캐릭터 IP(지적 재산)로 성장시키고 싶습니다. 예술과 상업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로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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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의 작품을 마주하면 자연스럽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둥글둥글한 캐릭터와 밝은 색감, 어디선가 본 듯한 친근한 표정. 작품은 빠르게 관객의 경계를 무장해제시킨다. 그러나 이 안도감은 오래가지 않는다. 귀여움의 뒤편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씁쓸함이, 경쾌함 아래에는 묵직한 질문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씩씩(최범식)은 스스로를 “비관적이지만 낙관적인 태도를 지향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 모순적인 자기 규정은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그는 삶을 쉽게 긍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작품은 ‘인생의 기본 값은 고통’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다만 그 고통을 대하는 방식만큼은 끝까지 유머와 위트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의 대표 캐릭터 ‘밴지’는 이러한 태도의 집약체다. 밴지는 어둡고 낮은 곳에서 출발한 존재이지만, 결코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과장된 눈망울과 붉은 코, 단순한 표정 속에는 욕망과 불안, 그리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생의 의지가 함께 담겨 있다. 밴지는 고통을 제거하려는 캐릭터가 아니라, 고통을 끌어안은 채 살아가는 태도를 상징한다.
씩씩의 작업이 흥미로운 지점은, 부정적인 감정을 애써 미화하거나 극복의 서사로 포장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는 열등감, 불안, 권태와 같은 감정들을 그대로 꺼내어 캐릭터의 형태로 제시한다. 그리고 그것을 무겁게 설교하기보다, 농담처럼 건넨다. 불쾌한, 불안한 현실을 향해 던지는 유쾌한 한 마디처럼.
그래서 그의 작품은 관객에게 어떤 감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위로를 강요하지도, 해석을 유도하지도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남고, 또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각자의 거리에서 머물 수 있도록 열어두는 태도 역시 씩씩 작업의 중요한 일부다.
최근 씩씩은 밴지를 중심으로 한 세계관을 점차 확장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이미지 반복이 아니라, 감정의 구조를 캐릭터와 서사로 한층 심도 있게 풀어내려는 시도다. 아울러 순수 예술과 상업, 마니아와 대중의 경계를 넘나들며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작업 형식도 모색 중이다.
비관을 출발점으로 삼되, 끝내 낙관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
씩씩의 작업은 조용히 묻는다.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도, 우리는 충분히 사랑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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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명 ‘씩씩’은 단순하지만 인상적인 이름입니다. 이 이름에 담긴 의미부터 듣고 싶어요.
작가명에도 제 성향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처음부터 멋있거나 그럴싸한 이름은 원하지 않았고, 오히려 촌스럽고 우스꽝스럽지만 직관적인 이름을 짓고 싶었습니다. 본명 ‘최범식’에서 촌스럽게 느껴졌던 ‘식’자를 반복해 ‘씩씩’이라는 이름을 떠올렸는데, 처음에는 너무 경박한 건 아닐까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씩씩’이라는 단어 안에 비관적인(씩씩대다) 의미와 낙관적인(씩씩하다) 의미가 동시에 담겨 있다는 점이, ‘어떤 현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되 낙관적인 태도로 표현’하는 제 작업 성향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느껴 이 이름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도예가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두더지 ‘밴지’ 캐릭터가 작업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 캐릭터는 어떻게 탄생했고, 또 작가님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과거 약 6년동안 지하 작업실에서 도예가로 생활했습니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암울하고 막막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던 중 월트 디즈니가 무명 시절 살았던 창고에서 동거하다시피 했던 쥐들을 모티브로 미키마우스를 만들었다는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훗날 그 이야기가 디즈니사에 의해 만들어진 치밀한 비즈니스 마케팅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나도 디즈니와 비슷한 처지 같은데, 그럼 난 어떤 캐릭터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자조 섞인 질문을 시작으로 낙서를 끄적였고, 그렇게 밴지(‘반지하’에서 나온 이름)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밴지를 가장 잘 표현하는 작품은 ‘지하실 부르스’가 될 것 같습니다.
'밴지'는 탄생한 지 얼마 안 된 캐릭터지만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캐릭터를 완성하기까지 어떤 노력과 시도가 있었나요.
창작자로서의 커리어는 도예가로 시작했지만, 사실 제 뿌리는 아주 어릴 적부터 즐겨 그렸던 '만화’라고 생각합니다.
중학생 때는 애니메이션 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했을 정도로 만화를 좋아했습니다. 어떤 계기로 도예를 전공하고 도예가가 되었지만, 그 시절의 작업 주제도 캐릭터였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아주 오랫동안 캐릭터를 그리고 만들어왔고, 그런 면에서 지금의 밴지는 축적된 시간의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작품이 탄생한 배경, 스토리를 알게 되면 그 반어법적인 표현해 놀라게 됩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작가님은 “인생의 본질은 고통이라고 믿는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런 깨달음, 믿음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고, 이를 작업에 어떻게 반영하고 있나요?
도예가 시절에는 주로 사회적 이슈 같은 외부의 문제에 집중했습니다. 당시 저는 굉장히 반골 성향이 다분했는데, 사실 그때는 제가 왜 그렇게 세상을 삐딱한 태도로 바라보았는지 스스로도 잘 몰랐습니다.
본격적으로 밴지 세계관을 만들면서 제 내면을 솔직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진 비관적인 태도의 뿌리가 결국 제 ‘결핍’에 의한 ‘열등감’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사실 이때 사춘기가 뒤늦게 찾아온 것 같다고 느낄 정도로 방황하기도 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쇼펜하우어, 불교 철학을 접하며 ‘인생의 본질은 고통’, ‘고통의 뿌리는 욕망과 집착'에 있다는 진리에 깊게 공감했어요. 앞서 이야기했던 결핍, 열등감 따위의 번뇌도 결국 욕망이 원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인생은 고통이다’ 에서 끝이 아니라 고통을 직시하고 잘 다스려서 행복을 지향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며, 이 과정을 작업을 통해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추상적인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해내는 작가님만의 작업 방식이 궁금합니다.
작업의 주제가 ‘고통’이다 보니, 일상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번뇌들을 도상으로 풀어내는 편입니다. 어떤 때는 단번에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마음에 드는 도상이 나올 때까지 지우고 묵히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하며 어렵게 완성하기도 합니다. 번뇌라는 추상적인 감정을 시각적으로 바꾸는 과정은 늘 쉽지 않습니다.
머릿속의 여러 재료를 조합해 은유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이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이 독서입니다. 사실 저는 독서 자체에 큰 취미가 있는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좋은 작업을 위한 재료를 찾기 위해 마치 심마니가 약초를 찾으러 다니는 마음으로 절실하게 책을 읽고 탐구하려고 노력합니다.
요즘은 나카노 교코의 ‘무서운 그림’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고전 명화들의 숨은 이야기를 작가만의 다채로운 관점(매콤한 맛)으로 해설해주는 내용입니다.
작품은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되기 마련입니다. 이에 대해 작가님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삶에서 겪는 번뇌들을 캐릭터 세계관으로 재가공하는 과정 자체가 제게는 치유이자 유희입니다. 저는 그 창작의 과정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관객이 제 작품을 단순하고 귀여운 캐릭터로 받아들이든, 그 이면의 메시지까지 받아들이든 그다지 의미를 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작가의 의도를 강요하기보다는, 각자의 시선으로 자유롭게 해석되는 편이 자연스럽다고 생각됩니다.
제 작업이 어떤 의미로든 누군가에게 닿아 관심을 받고 사랑받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것 같습니다.
작가님은 자신 역시 창작자이자 소비자로서 “모든 콘텐츠는 관객의 첫 시선을 8초 이상 사로잡아야 성공한다”는 법칙을 공감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작품을 그릴 때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있나요?
캐릭터라는 장르 자체도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강력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제 작품에는 유쾌한 캐릭터의 외형과 대비되는 ‘페이소스’가 담겨있는데, 밝은 모습 뒤에 숨겨진 쓸쓸함이나 비관적인 정서를 통해 관객의 흥미를 자극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요소로 은유적인 오브제들을 통해 ‘저건 어떤 의미일까?’하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유도합니다. 이런 과정들이 관객의 흥미와 호기심을 이끌어낸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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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보면 이제 밴지뿐만 아니라 밴지 여자친구도 보입니다. 앞으로 확장해 나갈 밴지의 세계관이 궁금합니다. 혹시 도예, 입체 작품으로도 밴지를 만날 수 있을까요?
우선 밴지의 페어링 캐릭터는 ‘왠지’입니다. 밴지라는 이름이 우울한 ‘반지하’로부터 영감을 얻은 것과는 반대로, “왠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 는 희망적인 의미로 ‘왠지’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습니다. 제 작업 중 <Hug> 연작을 기획하던 중 밴지의 페어링 캐릭터가 필요했는데, 이때 처음으로 왠지를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AI로 밴지 아트토이를 만들고 있었는데요, 언젠가는 꼭 아트토이로 관객들에게 사랑받는 날이 오길 기대하고있습니다.
작가님은 자신의 작품이 궁극적으로 감상자에게 어떤 존재가 되기를 바라나요?
과거에는 제 작업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영감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죠.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런 표현들이 위선적인 것 같다고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누군가를 치유하겠다는 거창한 목표보다는, 그냥 더 솔직해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저 제 작품과 캐릭터들이 제가 죽고 나서도 오래도록 특별한 존재로 기억되고 사랑받기를 바랍니다. 작가의 손을 떠나 독자적인 생명력을 가진 존재로서 대중에게 기억되는 존재가 되길 바랍니다.
앞으로 작가님의 작품 세계는 어떻게 확장되어 나갈지 궁금합니다. .
욕망을 상징하는 ‘밴지’를 시작으로 열등감, 권태, 불안, 분노 등 욕망에서 파생된 부스러기 같은 감정들을 캐릭터화하여 세계관을 확장해 나갈 계획입니다.
단기적으로는 회화 작가로서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사랑받는 것이 목표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이 세계관을 탄탄한 캐릭터 IP(지적 재산)로 성장시키고 싶습니다. 예술과 상업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로 발전시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