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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wanderer
#감정의파편 #불안 #율리아킴 불안은 말이 없다. 대신 조용히, 천천히 무너뜨린다. 그건 마음의 경계에 머무는 그림자처럼, 사라지지 않지만 마주해야만 하는 감정이다. Silence is the voice of anxiety. It doesn’t shout. It just quietly, slowly wears you down. Like a shadow lingering at the edge of your heart— never gone, only waiting to be faced.
부드러운 청록색 배경 위로 흰 날개가 겹겹이 포개져 화면을 가득 채운다. 한 올 한 올 결을 따라가며 그려진 깃털은 실제보다 더 풍성하게 부풀어 올라, 시선을 끌기보다 조용히 감싸 안는 담요처럼 느껴진다. 그 사이로 초록빛 눈을 가진 고양이의 얼굴만이 살짝 드러나, 관람자를 또렷이 바라본다. 날개는 천사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과장된 크기와 섬세한 반복 묘사는 현실의 보호 본능과 상상의 신비로움이 겹쳐진 형상에 가깝다. 작고 둥근 코와 입 주변의 부드러운 곡선, 진득한 시선은 이 존재가 이미 일상의 반려이면서도, 마음 한편의 수호신으로 자리 잡았음을 말해준다. 고양이는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르기보다는, 그 안에 포근히 파묻혀 있다. 품 안에 안긴 것인지, 스스로 세상을 품고 있는 것인지 애매한 이 자세는, 서로를 지키고 기대며 살아가는 관계의 감각을 떠올리게 한다. 관람자는 이 눈맞춤 앞에서, 자신이 품고 있는 존재들과 동시에 자신을 감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날개들을 천천히 떠올려 보게 될 것이다.
Please Remember Me 20 x 12 x 15 cm 2 Glasses, mysterious liquid, acrylic, paper, twine, on wooden box 2024
본 작품은 태양의 원만한 광명을 배경으로 관세음보살의 자비와 가피를 형상화한 불화입니다. 태양은 모든 존재를 차별 없이 비추는 지혜와 보호의 상징이며, 연꽃을 품은 관세음의 모습은 번뇌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맑음을 유지하는 수행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작품 전반은 전통 불화 도상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으며, 색채와 선의 흐름은 오랜 기도 수행 속에서 체득된 호흡과 리듬을 따라 차분하게 전개됩니다. 분채와 석채의 겹침, 은가루와 금액상의 절제된 사용은 화면에 깊이를 더하면서도 과하지 않은 균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본 작품은 20년 이상 불화 수행과 기도 정진을 이어온 주지스님의 작업으로, 단순한 장식적 회화가 아닌 수행의 과정과 마음가짐이 고스란히 담긴 기도불화입니다. 동시에 현대 공간에서도 무리 없이 어우러질 수 있도록 화면의 밀도와 여백, 색조를 신중하게 조율하여 완성하였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재료의 깊이와 화면의 안정감이 더욱 드러나는 작품으로, 기도의 대상으로서뿐 아니라 오랜 시간 곁에 두고 감상할 수 있는 소장용 원화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짙은 남색 배경 위에 놓인 꽃병은 하나의 작은 우주처럼 보인다. 오일 페인트의 두터운 질감으로 쌓아 올린 꽃과 열매, 나선과 원형의 조각들은 실제 정물이라기보다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뒤섞인 ‘꿈의 조합’에 가깝다. 각각의 색과 형태는 현실의 사물을 닮았지만, 과장된 크기와 비현실적인 배열 속에서 기억과 상상이 뒤엉킨 감정을 드러낸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노란 선은 창틀이자 경계선처럼 보이며, 테이블 위의 정물과 깊은 밤하늘 같은 배경을 나누어 놓는다. 이 경계는 깨어 있는 시간과 잠든 시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세계와 마음속에서만 피어나는 세계를 구분하는 동시에, 서로를 비추게 한다. 꽃병을 가로지르는 작은 기호와 리본 같은 선들은 일상의 사소한 기쁨과 비밀스러운 기억들을 암호처럼 남겨 두는 장치가 된다. 이 정물은 조용히 놓여 있지만, 화면 안에서는 끊임없이 색과 형태가 솟아오르고 흩어진다. 바라보는 이가 자신의 밤, 자신의 꿈을 떠올리며 이 테이블 앞에 함께 앉아 보기를 권한다. 꽃과 과일, 빛의 조각들 사이에서 어느 순간, 익숙한 장면이나 오래된 감정 하나가 불현듯 떠올라 말을 걸어올지도 모른다.
푸른 빛이 여러 겹으로 쌓인 화면 위에 은빛 선과 덩어리가 촘촘히 얽혀 있다. 고무와 모델링 페이스트로 구축된 두꺼운 질감은 도자기의 유약층처럼 빛을 머금고, 가까이 다가갈수록 표면의 갈라짐과 미세한 요철이 손끝으로 느껴질 듯 생생하게 드러난다. 평면 위에 솟아오른 선들은 마치 흘러내린 유약이 굳어버린 흔적처럼, 흐름과 멈춤이 동시에 남긴 시간의 기록처럼 보인다. 원과 톱니, 기호 같은 형상들이 화면 곳곳에서 서로를 가로지르며 연결된다. 분명한 의미를 알 수 없는 이 기호들은 문자이자 지도이고, 기계 장치의 부품 같기도 하다.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패턴과 우연히 생겨난 균열이 함께 존재하면서, 질서와 혼돈이 교차하는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 청자의 깊은 청록에서 시작된 색감은 은빛의 반사와 섞이며 몽환적인 공간감을 만들어 내고, 보는 이의 시선을 계속해서 화면 속으로 끌어들인다. 멀리서 볼 때는 하나의 추상적 풍경처럼, 가까이 다가가면 미세한 입체와 균열의 섬세한 구조가 또 다른 장면을 드러낸다. 이 작품은 단단히 굳어 있는 표면을 통해서도 여전히 흐르고 움직이는 감각을 품고 있으며, 관람자가 자신의 기억과 상상을 겹쳐 올리며 각자의 ‘환상’을 읽어내도록 조용히 여지를 남긴다.
사회 그 자체의 모습
Love, 116.8x91.1cm,oil on canvas,2016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장13절)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 그린도전서 13장 7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2한복음 3장 16절) 하늘에 거꾸로 자란 나무에 아기천사는 세상을 온전히 바라보며 그네를 타고 있다.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거꾸로 바라보자는 작가의 의도와 함께 땅에서 세상의 중심에서 그리고 하늘에서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성경귀절과 세상 사람들이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단어들이 그림에 온통 녹여져 드로잉 되어 있다. 짙은 청록의 화면 한가운데, 뒤집힌 나무처럼 보이는 거대한 분홍빛 덩어리가 떠 있다. 수없이 겹쳐 찍힌 점들은 잎이면서 꽃이고, 동시에 응축된 감정의 입자들처럼 보인다. 뿌리 대신 하늘을 향해 번져가는 이 나무는, 현실의 방향과 질서를 거꾸로 돌려놓으며 우리가 당연하게 믿어온 기준을 다시 묻는다. 아크릴 물감의 두터운 질감과 반투명한 색의 층들이 겹겹이 쌓인 바탕은 깊은 물속이자 끝없이 내려가는 마음의 심연처럼 느껴진다. 그 속을 가로지르는 형광 그린과 노랑의 선들은 균열이자 통로이며, 무심히 흘러간 낙서 같은 글씨와 기호들은 마음속에서 쉴 새 없이 떠오르는 생각의 파편을 닮았다. 화면 곳곳에 숨어 있는 작은 단어와 흔적들은, 조용히 들여다볼수록 더 많은 이야기를 끌어올린다. 분홍 나무 아래, 아주 작게 그려진 그네를 탄 인물은 혼자이지만 고립되어 보이지 않는다. 끝없이 내려가는 듯한 푸른 공간 속에서도, 머리 위로 드리운 거대한 사랑의 나무에 매달려 흔들리며 자신만의 커렌시아를 찾아가는 존재처럼 보인다. 세상이 거꾸로 보이는 그 자리에서, 관람자는 위와 아래, 현실과 꿈, 상처와 위로의 위치를 다시 정렬해 보게 된다. 이 작품 앞에 서는 순간, 자신에게만 열린 작은 그네 하나를 마음속에 떠올려 보게 되는 작업이다.
맹호도 : 가죽에 혼합재료 스크래치 기법으로 제작
모든 배관과 구조를 밖으로 드러낸 퐁피두 센터는 마치 거대한 유기체처럼 보인다. 그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은 이 거대한 장치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세포'와 같은 역할을 하며, 건축물이 단순한 건물을 넘어 공공의 거실이 되어버린 파리의 어느 여름밤.
숲의 가장 깊은 곳일까, 아니면 바다의 끝일까. 끝없이 헤메어도 좋다. 여긴 내 감정이 머무는 곳이니.